아카시아향 나는 여인에게 묻다. 우산을 씌어준 적이 있나요?
2012/04/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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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중고등학교 등하교길은
봄만 되면  개나리로 시작해서 목련과 아카시아로 인해 눈과 코가 매우 즐거웠던 기억들이 있다.
그중에도 어느 토요일 봄날 오후였던가.
자율학습은 아니였고 전산반에서 컴퓨터를 하다 뒤늦게 집에 가려고 보니.
비가 억수같이 오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책가방으로 하늘을 가리고 뛰다 말다 학교 교문을 얼마 못 벗어난
어느 집 대문 처마에 서서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비를 보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니? 내가 우산 씌어줄께. 같이 가자."
라며 우산을 씌어주던 그 여인을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기억이라는게 그때 그 상황을 온전하게 기억해 내지는 못하지만
와인잔같은 맑은 목소리.
가지런한 다리와 하이힐.
가느다란 손목에 손목시계.
귀밑머리만 뒤로 한번 묶은 단아한 긴 생머리.

우산을 같이 쓰고 오는 내내.
그 여인에게서 났던 아카시아 향으로
가슴이 쿵쾅거렸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비 오는 토요일이면 그 집앞을 쓸데없이 서성거렸던 기억도 있고.
아카시아 향이 나는 여인에게
"혹시 비오는날 모르는 사람 우산 씌어준 적이 있나요?" 라고 한동안 묻고 다녔던 기억도 있고.

불현듯 사랑비라는 드라마를 보다 생각나는 기억들.

생각해보니 영화 "클래식"에서 지혜와 상민이,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인후와 태희가.
비오는날 우산속에서 만난 연인들이 아니던가.


2012/04/10 09:30 2012/04/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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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구 2012/05/12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비 처음엔 영상이 아름답던데 요세는 처음같은 영상미가 없네요ㅎㅎ
    형 잘지내죠 ㅋㅋ 게시판에 글 남긴게 어제 같은데 다시보니 일년이 넘었네요;;
    '번지 점프를 하다' 떠올리니 승현이가 생각나네요...ㅎ
  • 진구 2012/05/28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사랑비보다 예전 회상장면 나오는거보고 여기 글쓴거 생각나서 들어 왔어요ㅎㅎ
    전 오두막삼 나오길레 오두막 팔았는데 오두막삼 가격이....ㅠ.ㅜ 지금 좀더 가격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 hongyver 2012/06/13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찬석이도 5Dmark3 샀는데.
      사면 연락해 함 호수공원이라도 출사가야지.
  • 봉봉 2012/06/06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뒤로 비 오는 토요일이면 그 집앞을 쓸데없이 서성거렸던 기억도 있고.
    아... 너무 귀여워요. 상상하게 되는 문장.
    • hongyver 2012/06/13 0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귀엽....감사....합니다.(감사해야하는거 맞죠? 후후후)
      봉봉님도 사진보면 만만치 않게 귀여우세요. ^^
  • maro 2012/10/10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날이후 여자의 조건에 발목이? ㅎㅎㅎ

  • 버린만큼 담는다.
    2012/03/2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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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방바닥에 쌓여있는 책들을 보다 못해 책장에 있는 책들을 정리했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지저분한 살림살이를 제발 좀 버리시라고 어머니께 말씀 드리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버릴께 없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딱 그 심정이랄까.
    막상 버릴 책들을 고르려니 그게 쉬이 안되더라.

    아파트 앞 쓰레기장에 가져가지 않고 집 밖 한켠에 쌓아두고 며칠을 두었더니
    어느날 싹 없어졌다.

    아마 누군가 가져간듯한데 어찌나 서운하던지.
    중고로라도 팔껄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골라 버린 책들 덕에 책장에 듬성듬성 빈틈이 보인다.
    이후로 또 책을 사게되면 얼마가지 않아 방바닥에 쌓일께 뻔하지만.
    그래도 책장 정리 기념으로 몇권을 책을 사서 꺼꾸러 꽂아두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책장에서 필요없는 책 골라내듯이.
    인생이나 기억들도 지우개로 지우거나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릴수 있다면 좋겠다.

    ...

    책을 읽다보면
    읽고 싶은 책(인문학 서적?)과 읽어야 하는 책(직업과 관련된 IT관련 서적?)사이에서 고민할때가 많은데.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읽고 싶은 책이 읽어야 하는 책이라 좋겠다 싶기도 하고.(속 모르는 소리같지만)

    2012/03/22 08:04 2012/03/2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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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연주 2012/07/03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빠도 책 많다. 원더보이는 어때요?오빠집에 있는책에도 첫장에 기적을 기다리며" 라는 자필 사인 있어요? ㅎ
    • hongyver 2012/07/13 0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더보이 아직 책장에 꺼꾸러 꽂혀있어.풉. 아 그래? 그거 확인해봐야겠어.

  • 윤회
    2012/02/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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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분(안근영님)이 찍은 "윤회"


    취미 삼아 찍던 사진이.
    언제가부터 누가 억지로 시키기라도 한 모양처럼
    심오한 작품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어떤 사명감 같은걸 느끼면서 부터는.
    카메라를 구석에 처박은 지 오래.

    고민한답시고
    필름을 찍네. 흑백을 찍네. 인화를 직접 해보네.
    어쩌네 해도
    밑천이 없는 빈곤한 상상력과 인문학적 지식으로는.
    늘 제자리라고.

    지난 출사길 지인분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듣고 하면서
    (낙엽, 마른 풀, 타 버린 재 등은 현재의 상태이고, 이들을 둘러 싼 원형의 형태들은 삶의 주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성했습니다. 라는 작가의 말)
    생각났던 한 문구.

    뛰어난 메타포는 감각의 문으로 들어가 사유의 문으로 나온다.(신형철, 느낌의 공동체(요즘 감탄하면서 읽는중))

    그래, 내가 못하면 대리만족이라도.
    2012/02/15 09:15 2012/02/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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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수의 방심(放心) -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중에서
    2012/01/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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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식때 방심하다 찍힌 사진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앞뒤 문을 다 열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마음을 놓아 버리고 드러누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도 사람도 모두 방심한 터라 제비가 묘기 한번 부려보고 싶었겠다. 그 찰나의 체험에서 눈 밝고 몸 예민한 시인들은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보고 몸의 숨구멍들이 죄다 열리는 듯한 경이도 느낀다. 이런 시들이 있어서 메트로 폴리스의 숨구멍도 가끔식은 탁탁 열린다. '결심'이 아니라 '방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편히 내려놓아야 그 틈으로 시도 찾아들어오곤 하는 것이다.
    그 방심은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열린 마음속으로 타인들의 곡절이 흘러들어온다.
    그의 시들은 사연을 품고 있을 때 특히 아름다워진다.
    ...
    보험 서류를 들고 찾아온 여자 후배의 입에서 문득 튀어나온 '자기'라는 말이 둘 다를 무안하게 한 사연도 있다.("자기라는 말에 종신보험을 들다")
    ...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삐집고 들어올 빈 틈이라도 보일까 날 세우고 빳빳하게,
    누군가 나를 탓할까 눈치보며 예민하게 신경 곤두 세우며,
    그럴필요가 없겠다.
    허를 좀 찔리면 좀 어때?
    방심해서 그래서 제비의 하얀 배도 보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것도 보고.
    2012/01/19 08:46 2012/01/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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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봉 2012/01/26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느낌의 공동체 좋죠? 책도 좋고 신형철은 원래 좋아하지만. '느낌의 공동체'라는 단어가 참.. 정말 그런 공동체가 가능할까요..
    • hongyver 2012/01/26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좋아요. 블러그 보고 감히 책 이야기 할까하다 말았는데 역시.
      느낌의 공동체 되면 말해서 생긴 오해가 없어 싸울일도 없겠다 싶다가도 전 남의 느낌(내가 느끼지 못하는)을 읽는(?) 재미로 사는데 그런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니 웬지 먹먹하기도 하고.

  • 삼성을 살다 - 이은의
    2012/01/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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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민한 게 뭐 어때서? 예민하니 건들지 말라고 해."
    "상처 받은 본인 외에 누가 그 상처의 크기나 보상방법을 논할 수 있는데?"
    "본인의 마음이 시키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마!"

    예민하다구? 내가 너무 예민한거야?
    좋은게 좋은거 아냐? 그냥 대충 넘어가자구.
    좋은게 좋은거야? 좋은게 좋은게 아니고 올바른게 좋은거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모여 북쪽나라 누구처럼 우상화도 아니고 자서전에 밑줄 긋고 어록이나 외우고.
    상상만 해도 헛웃음이 나온다.
    똑똑하다는 거와 올바르다는 건 다르구나.

    올곧은 이 아가씨를 보니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쪽에서 낯선시선 )
    우리나라의 맹목적인 교육은 자아의 실현(?) 보다는 처세술을 가르치는 학원이라는 생각.
    옳다 그르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좋은게 좋은거야 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입신양명만을 생각하는...
    여기까지 생각이 뻗치다가 "너나 잘해!" 라는 내 스스로에 던지는 핀잔에 갑자기 반성(?)모드.

    2012/01/11 08:37 2012/01/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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