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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의 방심(放心) -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중에서
2012/01/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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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때 방심하다 찍힌 사진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앞뒤 문을 다 열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마음을 놓아 버리고 드러누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도 사람도 모두 방심한 터라 제비가 묘기 한번 부려보고 싶었겠다. 그 찰나의 체험에서 눈 밝고 몸 예민한 시인들은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보고 몸의 숨구멍들이 죄다 열리는 듯한 경이도 느낀다. 이런 시들이 있어서 메트로 폴리스의 숨구멍도 가끔식은 탁탁 열린다. '결심'이 아니라 '방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편히 내려놓아야 그 틈으로 시도 찾아들어오곤 하는 것이다.
그 방심은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열린 마음속으로 타인들의 곡절이 흘러들어온다.
그의 시들은 사연을 품고 있을 때 특히 아름다워진다.
...
보험 서류를 들고 찾아온 여자 후배의 입에서 문득 튀어나온 '자기'라는 말이 둘 다를 무안하게 한 사연도 있다.("자기라는 말에 종신보험을 들다")
...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삐집고 들어올 빈 틈이라도 보일까 날 세우고 빳빳하게,
누군가 나를 탓할까 눈치보며 예민하게 신경 곤두 세우며,
그럴필요가 없겠다.
허를 좀 찔리면 좀 어때?
방심해서 그래서 제비의 하얀 배도 보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것도 보고.
2012/01/19 08:46 2012/01/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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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봉 2012/01/26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느낌의 공동체 좋죠? 책도 좋고 신형철은 원래 좋아하지만. '느낌의 공동체'라는 단어가 참.. 정말 그런 공동체가 가능할까요..
    • hongyver 2012/01/26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좋아요. 블러그 보고 감히 책 이야기 할까하다 말았는데 역시.
      느낌의 공동체 되면 말해서 생긴 오해가 없어 싸울일도 없겠다 싶다가도 전 남의 느낌(내가 느끼지 못하는)을 읽는(?) 재미로 사는데 그런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니 웬지 먹먹하기도 하고.